‘The Ground’
“It might be that if we love someone beyond measure, then even death falls in that love and forgets his own duty, leaving the person whom he ought to perish alive, as vividly as the person was in his lifetime. And this might be what you call the photographic image.”<Excerpt from Kim, Jinyoung’s “Silent Days.”>
The series named “The Ground” began with my effort to comfort myself after losing my sister. His death was an accident that taught me that how to take a step forward in everyday life could determine life and death. I have no choice but to miss the time that we shared together, but on the other hand, it remains in my memory as a different being, telling me that death is not disappearance but another form of ‘being alive.’ What was it that was shown to her lying in her last bed? Was our house seen by her eyes? When man dies, he returns to the dust. I left for the natural landscape that includes the dust in which ‘the deceased is living.’
During working on this project, I found that the natural scenery, living space, and the space of death in each region are joined together as one. In this sense, I tried to observe the objects in nature from the point where I could show them equally, rather than to focus on only one of them. I was attracted by none of them. I just looked into and conform to every capillary vessel of nature. And by representing the four seasons in elegant colors, I tried to unite nature, the living space of the survivors, and the grave as the residence of the dead. In my works, the term ‘Ground,’ here, means both the abode of the deceased and the place of living, and the grave placed in ‘Ground’ works as a mediator between the living and the dead. This series, “The Ground, ” was intended to show that life and death, or the world of life and that of death, are neither separated nor walled; but rather, there is a continuation between them, for both are living together by picking out their own ‘Ground.’ 2013.
‘Foreshore’ (Jugok-ri, Ujeong-eup, Hwaseong-si, Gyeonggi-do, Korea)
Even several years ago, there used to be a mudflat here where fishermen were catching fish at high tide and women were gathering shellfish at ebb tide. One day, a great number of life forms in this place suddenly disappeared with the sea. However, these dry and cracked vestiges of the sea, where nothing seems to survive, began to be inhabited once again by new life forms: small sea crabs dig holes to build their home and the populations of Suaeda japonica, a plant that grows on salt marshes, put forth flowers assiduously. In springtime, it rises again and again no matter how harshly you trample upon them, and easily crumbles to pieces even by the most careful step when summer is over and fall comes. And then, it waits for spring again.
I came here for the first time in last May when spring is almost gone, and stayed here watching the last season. Did this place offer the shelter of comfort to me who had been trampled upon by the heavy foot of life? How much time and oblivion will be needed to be able to wait for beauty after once losing it? I learned the tremble of life and what waiting is from all the living things in this barren land, or the mere vestiges of the sea. I found the beauty of life in them who are week but proudly pay for their life. As the thrown-away gloves, boots, and shells tell you about the past time of this land and the life forms living here about today, these photographs will talk about the time of my youth in which I aspired to live as passionately as any other person. 2006.
<터, 지속된 시간>
터, 지속된 시간 우리가 누군가를 지극히 사랑하면, 죽음마저도 그 사랑에 빠져서 자기의 임무를 그만 잊어버리고, 소멸시켜야 하는 그 사람을 오히려 생생하게 살아 있는 모습 그대로 남겨놓는 건 아닐까. 그것이 사진 이미지가 아닐까.” <김진영_‘조용한 날들’ 중 발췌>
<터, 지속된 시간>은, 먼저 떠난 동생의 죽음을 스스로 위로하는 것에서 시작되었다. 그 죽음은 일상에서 한 걸음을 어떻게 내딛느냐에 따라 삶과 죽음이 결정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만든 우연한 사건이었다. 이젠 그리움으로 머물 뿐이지만 그와 함께했던 지난 시간들은 기억 속에 또 다른 존재로 머물러 죽음은 사라짐이 아닌 ‘살아 있음’이라는 것을 가르쳐준다. 동생이 마지막으로 누운 자리에선 무엇이 보였을까. 그 눈에 우리가 사는 집이 보였을까. 사람은 죽으면 흙으로 돌아간다. 나는 ‘죽은 자가 살고 있는’ 그 흙을 품은 곳, 자연 풍경으로 향하였다.
<터, 지속된 시간>의 촬영을 시작하면서 각 지역의 자연 풍경과 생활 공간 그리고 죽음의 공간이 하나로 어우러짐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러한 관점에서 자연 속의 대상 가운데 어느 하나만 주목하기보다는 모두를 공평하게 보여주는 위치에서 관찰하고자 하였다. 낱낱의 대상에게 이끌리지 않고, 자연의 미세한 실핏줄까지 들여다봄으로써 그에 순응하였다. 그리고 우리의 사계절을 단아한 색으로 재현하여 자연과 산 자의 생활 공간 그리고 죽은 자의 거처인 무덤을 하나로 아우르고자 하였다. ‘터’는 죽은 자의 거처와 산 자의 생활 터전을 의미하며, 그 안에서 무덤은 산 자와 죽은 자가 만나는 매개체가 된다. <터, 지속된 시간>은 자연 풍경을 통해 삶과 죽음, 삶의 세계와 죽음의 세계가 경계나 단절이 아닌 지속의 관계에서 터를 잡고 살아가는 삶의 이야기를 사진으로 담고자 했다. 2013
<生, 바다풍경> : 경기도 화성시 우정읍 주곡리
몇 해 전만 해도 이곳은 물이 들어오면 어부들이 고기를 잡고, 그 물이 빠지면 아낙들이 조개를 줍는 갯벌이었다. 어느 날 바다와 함께 이곳의 많은 생명들이 사라졌다. 아무것도 살아남지 못할 것 같은 갈라진 이 바다의 흔적 위에 또다시 새로운 생명들이 살아가고 있다. 바닷게가 갈라진 틈을 파 살아갈 터를 만들고, 염분을 먹고 자라는 칠면초가 억척스럽게 꽃을 피운다. 봄날 그들은 아무리 밟아도 구김 하나 없이 다시 일어서고, 여름이 가고 가을이 되면 조심스러운 발걸음에도 이내 바스러진다. 그리고 다시 봄을 기다린다.
5월, 봄의 끝자락에 이곳을 처음 찾아와 계절이 지나는 모습을 내내 바라보았다. 생활의 무게에 밟힌 깊은 발자국을 어루만지며 위로해준 이곳은 내게는 안식처였는지도 모른다. 아름다움을 잃은 다음 다시 그 아름다움을 기다리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과 잊힘이 필요한 것일까? 바다의 흔적만 남은 이 척박한 땅에서 살아가는 모든 생명에게서 생의 떨림과 기다림을 배웠다. 나약하지만 제 생명의 값을 당당히 치르고 있는 이들에게서 생의 아름다움을 느꼈다. 버려진 장갑과 장화 그리고 조개껍데기가 이 땅의 지난 시간을 이야기하고, 지금 이 땅에 살아가고 있는 생명들이 오늘을 이야기하듯, 이 사진들은 그 누구보다 그 무엇보다 열정을 꽃피우며 살고 싶어 했던 내 젊은 날의 시간을 이야기해 줄 것이다. 2006
하얀 집
<하얀 집> 시리즈는 13년 전 전라도 지방 외곽에 존재했던 한 정신요양원을 촬영한 사진들이다. 본인은 당시 호기심 많고 사진에 매혹 된 대학생이었고 무언가 특별한 사진 대상을 찾아서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던 때였다. 그러던 중 우연한 기회로 한 정신요양원을 소개받았고 담당자로부터 힘들게 촬영 허가를 받아낼 수 있었다. 촬영은 6개월 정도 진행됐다. 본인은 우선 그곳에 거주하는 요양자들과 친분을 쌓기 위해 당분간은 카메라를 사용하지 않으면서 그들과 어울렸다. 그리고 일정한 기간이 지나서 그들이 나를 더 이상 적대적인 시선으로 보지 않게 되었을 때, 본인은 그들의 생활과 얼굴들 그리고 특유의 행동들을 포착하면서 그들이 살아가는 삶의 단면들을 프레임 안에 담았다. 핫셀 블라드의 정방형 포멧을 활용해 그들에게서 느껴지는 긴장감을 드러내고, 시선을 중앙에 몰입해 인물에 집중하고자 했다. 나를 응시하는 시선을 따라가면서 사람들의 독특한 포즈와 표정들의 재현을 통해 그들의 개별성을 드러내고자 했다.
그렇지만 이후 본인은 그렇게 얻어진 사진들을 발표하지 않은 채 간직하고만 있었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 이들의 모습들을 이미지로 바꾸어서 그렇잖아도 소외된 그들을 또 한 번 구경거리로 만드는 것은 아닌가라는 도덕적 가책 때문이었다. 그러면 왜 나는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에는 그 사진들을 발표할 수 있다는 생각을 품게 된 걸까. 그건 두 가지 이유 때문인 것 같다.
6개월 간 함께 지냈지만 나는 그들에 대해서 사실상 아무 것도 알고 있지 못했다. 그들이 왜 이곳에서 갇힌 삶을 살아야 하는지, 도대체 무슨 일들이 그들에게 일어났던 것인지, 그들이 무슨 생각들에 종일 골몰하고 있는지, 그들의 미래가 어떤 것인지 - 질문들은 많았어도 거기에 대한 답들을 나는 구할 수가 없었다. 다만 한 가지,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웠기에 저들은 그만 정신 줄마저 놓치고 말았던 걸까, 그들의 아픔, 그들의 외로움, 그들의 슬픔들은 얼마나 큰 것일까, 라는 생각에 자신도 모르게 아려오곤 하던 아픈 마음만은 비켜갈 수가 없었다. 그리고 이후 나 또한 삶의 이러저러한 국면들을 건너가면서 아픔과 외로움 슬픔들을 만나게 되었고, 그때마다 오래 전 그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그들과 나 사이에 도대체 무슨 차이가 있는 걸까, 라는 질문과 마주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오랜 사진들을 다시 꺼내는 건 아마도 이제는 그 질문에 답하고 싶었기 때문인지 모른다.
다른 한 가지 이유는 동병상련의 마음이 아니라 그들에 대한 새로운 발견 때문이다. 내가 촬영 오는 날에는 요양원 문 앞에서 마치 그리운 사람을 기다리듯 나를 기다리던 이들, 그들에게는 무엇보다 귀중해서 때로 싸우기까지 하는 빵이나 과자들을 선뜻 내게 내밀던 그들, 내가 만들어 준 초상사진을 사물함 가장 깊은 곳에 간직하던 그들, 때로 의심스러운 시선으로 노려보지만 그러다가도 눈이 마주치면 안타까움이 가득한 시선으로 슬그머니 웃곤 하던 그들의 선한 모습들이 지금도 돌아보면 눈앞에 선연하다. 하지만 그러한 기억들 속에서 내가 발견하는 건 다만 과거 이미지들만이 아니다. 그 이미지들을 통해서 내가 새롭게 발견하는 건 소위 ‘비정상’이라고 불리우는 그들에게 간직되어 있는 그 어떤 따뜻한 인간적인 것과 ‘정상’이라고 자부하는 오늘 우리들이 거의 예외 없이 안에 감추고 있는 차가운 가슴 사이의 경악스러운 모순이다. 그 모순을 통해서 본인이 깨닫는 건, 어쩌면 우리들이 나날이 잃어가는 그 어떤 인간적인 것이 다름 아닌 우리가 추방해 버린 정신 요양원의 사람들 안에 간직되어있다는 사실이다. 아마도 나는 이제야 발견하는 이 사실을 옛 사진들을 통해 전달하고 싶은지 모른다.
그래도 이들에 대한 미안함은 여전히 남는다. 사진은 그렇게 부끄러움을 가르치는 매체인 것 같다. ▪2015
푸른방
자기만의 고유한 슬픔을 지시할 수 있는 기호는 없다. 이 슬픔은 절대적 내면성이 완결된 것이다. 그러나 모든 현명한 사회들은 슬픔이 어떻게 밖으로 드러나야 하는지를 미리 정해서 코드화했다. 우리의 사회가 안고 있는 패악은 그 사회가 슬픔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롤랑바르트_’애도일기’ 중에서>
<푸른 방> 시리즈는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지극히 평범한 여자들을, 그녀들의 침대 곁에서 찍은 사진이다. 안식처이자 안전지대이면서 가장 내밀한 삶을 드러나는 그녀들의 침대 방에서 정상적인 사회성을 드러내고자 외출복을 입도록 요구하였다. 그러고는 그녀들이 자주하는 포즈를 취하게 한 다음, 그녀들의 살아온 이야기를 나눠가며 환경에서, 혹은 살아온 경험에서 나오는 그 사람만의 고유한 표정과 포즈를 발견하고자 하였다. 롤랑바르트가 ‘누구나 자기만이 알고 있는 아픔의 리듬이 있다’라고 ‘애도일기’에서 언급했듯이, 나는 멜랑콜리를 슬픔에 빠진 상태로 정형화하지 않으려 했다. 사진 속 대상들의 공간에서 발견한 오브제와 그녀들이 살아온 삶을 통해 그들 자신도 미처 인식하지 못한 채 나오는 고유의 표정과 몸짓으로 표현되는 멜랑콜리의 기호를 발견하였다. 나는 슬픔의 상태에 빠져 마음이 점점 메마름에서 삭막함으로 변화하고, 외부의 시선으로부터 무감각해지며, 무기력한 생활에 빠져 지내는 것을 오랜 시간 동안 지속해왔다. 내게 있어 멜랑콜리는 슬픔을 제대로 정리하지 못하고 풀어내지 못해 에너지가 안으로 고인 상태이다. <푸른 방>의 의미는 이처럼 붉은 열정이 푸른 열정이 되어 슬픔이 마음 안에 고여 있는 상태를 뜻한다.
현대인은 끊임없이 자기 계발을 하며 지적 감각과 세련됨이라는 무기로 교양화되었다. 자신을 아름답게 가꾸는 미적 감각과 더불어 합리적 이성 또한 발달되어 모든 것을 잘 관찰하고 감정을 제어하는 능력 또한 갖췄다. 자신을 방어하는 기술도 뛰어나 예민하거나 본능적인 감정들은 억누르고 기계처럼 다루려 해서 우리의 감각은 갈수록 단순화되며 둔탁해지고 있다. 그리하여 육체의 감각은 점점 딱딱해져 가고 정념은 갈 곳도, 설 곳도 없이 푸른 방에 고요히 머물러 있다. 2014
다방 레지
‘다방레지’ 시리즈는 2002년 전라도 외곽 지역과 강원도 전방 지역 안에 위치한 ‘다방’이라는 공간과 그 공간과 관계되는 사람들을 찍은 사진들이다. 사진을 촬영하던 당시 본인은 서른 살의 늦깎이 대학생이었고, 다큐멘터리 사진에 대한 열정, 다양한 공간과 인물들에 대한 호기심으로 가득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던 중 당시 지방 대학교 외곽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다방’은 호기심을 자극하였고, 수십 차례 섭외의 어려움을 거쳐서 몇몇 다방 공간과 인물들을 촬영할 수 있었다. 촬영 섭외가 되면, 우선 공간과 사람들이 익숙해질 때까지 일정한 시간을 기다린 다음에야 비로소 여러 번의 촬영을 통해 이미지를 프레임 안에 저장했다. 다방 안에 손님이 많거나, 레지가 외출을 나가고 자리를 채울 수 없을 경우에는 간간히 손님과 함께 커피를 마시며 일상적 이야기를 함께 나누기도 했고, 그러는 사이에 사진의 순간을 만나면 셔터를 누르는 식으로 촬영을 계속했다.
본인은 ‘다방’이라는 일반적이면서도 특별한, 열려 있으면서도 닫혀있는 공간을 배경으로 그 안에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 (마담과 종업원 그리고 일시적으로 그곳의 사람이 되는 손님들)과, 그들 사이에 존재하고 일어나는 다양한 삶의 모습들을 가능한 객관적 시선으로 프레임 안에 담고자 했다. 그러나 그러한 작업을 통해서 무엇보다 강조해서 드러내고 싶었던 건 소위 레지라고 불리는 이십대 젊은 종업원들의 몸과 얼굴들, 그들의 헐벗은 신체 안에서 암묵적으로 드러나는 삶의 숨은 애환과 외로움, 그러한 외면과 내면의 표정들을 통해서 이해할 수 없는 채로 느끼고 맛보는 생의 가난함과 무거움, 헐벗음과 잔인함을 드러내는 일이었다. 그러한 주제를 가능한 뚜렷하게 강조하기 위해서 핫셀 블라드의 정방형 포멧을 선택했고, 인물의 안과 밖의 얼굴들을 동시적으로 드러내기 위해서 피사체의 시선과 포즈를 중앙으로 집중시키는 방식을 사용했다.
그러나 이후 본인은 나름 꽤 힘든 수고를 거쳐 얻어 낸 다방 이미지들을 발표 하지 않은 채 오랜 시간 간직하고만 있었다. 그러한 망설임에 이유가 있었다면, 무엇보다 비록 앞길이 암담하기는 해도 아직 미래의 시간들을 앞두고 있는 젊은 여인들의 한때 레지의 삶을 정지 이미지로 고착시켜 발표함으로써, 그들의 삶을 더 어둡게 만들지도 모른다는 도덕적 가책 때문이었다. 거기에 더해서 사실 당시 본인은 다만 감정이입만이 있었을 뿐, 그들의 척박한 삶과 나름으로 보호받는 나의 안전한 삶 사이에 그 어떤 연결고리를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런 점에서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에 이르러 간직했던 다방 이미지들을 세상에 선보이고자 하는 그 까닭은 사실 본인에게도 수수께끼로 남아있다. 다만 촬영 당시 그들과 나누었던 여러 이야기들의 기억은 아직도 또렷하다. 지금의 척박한 삶으로 건너오지 않으면 안 되었던 다양하고도 내밀한 까닭들이 있었지만 결국은 그 이유들이 모두 ‘돈’ 때문이었다는 사실, 그리고 어쩌면 이루어질 가능성이 거의 없어 보였지만 그들이 저마다 안에 ‘희망’을 간직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그 기억들이다. 그런데 그 오래 전 기억 속에서 다시 만나는 그들의 얼굴들이, 적어도 본인의 판단으로는, 지난 과거가 아니라 오히려 이 시대의 얼굴, 오늘을 견디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초상이라는 느낌과 생각은 본인만의 것일까.
본인이 오래 간직했던 사진들을 이제 선 보이고자 하는 까닭 또한 그로부터 연유하는 것 같다. 놀랍게도 13년 전 가난한 삶의 얼굴들이 과거의 얼굴이 아니라 오늘 어디에서나 마주치는 이 시대 평범한 이들의 얼굴들과 판박이처럼 겹친다는 건 무엇을 말하는 걸까. 그건 그 사이에 소위 자본주의적 성장을 이루었다고는 하지만 아무 것도 달라진 것이 없는 척박한 생활, 의지할 수 있는 건 이루어질 가능성이 요원한 희망뿐인 가난한 삶이 아닐까. 그리고 그것은 어제나 오늘이나 달라진 것이 없이 이어지는 힘없는 이들의 살아가는 방식이자 얼굴이며 다름 아닌 오늘 여기서 우리들이 힘겹게 살아가는 현실의 초상이기도 할 것이다.